
방전되어 도착한 바이크
내가 할리데이비슨을 타기 시작한 지 벌써 8년이 넘었고, 현재의 바이크인 할리데이비슨 로드글라이드와 함께 한 시간도 어느덧 7년이 되었다. 그 동안 할리데이비슨이 나에게 안겨준 즐거운 순간들은 너무도 많아서 도저히 다 나열할 수 없지만, 할리데이비슨도 착하기만 한 녀석(?)은 아니라 간혹 당황스러웠던 기억들도 있었다. 아마도 할리데이비슨이 아닌 다른 바이크들도 비슷한 기억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번 호에서는 내가 경험한 바이크를 타면 당황스러웠던 기억을 나누려고 한다.
나는 첫 바이크가 할리데이비슨이기도 했고, 할리데이비슨을 선택하긴 했지만 구매하기 전에 선입견이 있었다. 할리데이비슨은 가격은 비싸지만 성능은 배기량에 비해서 형편없고, 미국제품이라 투박하며 고장도 자주 나서 관리가 까다로운 녀석이라는 주변의 이야기에 세뇌(?)되어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할리데이비슨을 정작 구매하고 나서는 그들의 주입교육(?)과는 상당히 다른 바이크의 모습에 놀랐고 지금도 여전히 놀라움을 갱신하고 있다. 배기량에 비해서 성능이 부족하다는 것은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클래식 공랭엔진 바이크로서 크루징과 투어링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차고 넘치는 성능이다. 할리데이비슨으로 우리가 트랙주행이나 레이싱을 하려고 사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할리데이비슨은 풍부한 토크를 기반으로 자동차의 엔진처럼 천천히 회전하면서도 고단기어로 느긋하고 편안하게 장거리를 주행할 수 있고, 장거리투어 뒤에도 피로감이 일반 바이크에 비해서 크지 않아 일주일 정도의 장거리투어도 부담 없이 크게 지치지 않고 진행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에 성능에 대한 아쉬움은 잊기로 한다.
다른 바이크들 보다 잦은 고장에 시달릴 것이라는 의견에는 ‘그렇지 않다’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첫 바이크인 할리데이비슨 포티에잇도 전혀 고장이 없었지만 그건 오랜 기간 타지 않아서 당연히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 타고 있는 두번째 바이크인 할리데이비슨 로드글라이드는 일반적인 바이크에서 보기 힘든 주행거리인 18만km를 훌쩍 넘긴 현재 상태에서도 놀라운 내구성과 신뢰성을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엄청난 내구성 때문에 정비시기를 가늠하기 어려운 점이 나에게 몇 번의 당황스런 순간을 안겨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다음은 내가 할리데이비슨을 타면서 주변에서 주입한(?) 선입견과 제법 차이가 있던 부분들이다.

할리는 수시로 방전에 시달린다는 선입견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할리데이비슨을 타면서 방전으로 오도가도 못하는 경험을 한 라이더들이 많은 건 사실이다. 할리데이비슨은 도난방지장치가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어서 마치 자동차에 블랙박스를 상시로 설정하면 차량도 불현듯 방전되는 것처럼 다른 바이크보다 빨리 방전된다. 하지만, 이것도 용량이 크지 않은 배터리가 장착된 스포스터 계열에서 심하고 제법 큰 배터리가 장착된 투어링바이크들은 생각보다 오래 버텨서 나는 아직 예상치 못한 방전을 경험한 적은 없다. 방전을 한번 경험하긴 했지만 그건 제주투어 후 바이크 탁송 중에 탁송기사님이 도난방지장치를 운송모드로 설정하지 않아서 발생했을 뿐이다. 경험상 지하주차장에 보관하고 2주일에 한번 정도 중거리 투어를 다녀오는 정도만 해도 바이크 방전은 경험하기 어렵다.
할리는 잔고장이 많다는 선입견
내 경험으론 이건 많이 과장된 소문이다. 내 할리는 기본적인 경정비와 투어 후에 타월로 한번 닦으면서 둘러보는 정도가 전부지만 별다른 고장이 없었다. 일반적인 오일교환과 소모품 교체 외에 적지 않은 정비/수리비가 들어간 부분은 12만km 정도에 약해진 고무호스 교체와 넥베어링 교체, 16만km 정도에 불량휘발유로 인한 인젝터 교체, 18만km 정도에 유압클러치 액츄에이터 교체(이건 리콜 항목이었다). 그리고 장마철 폭우 속을 장시간 주행한 후에 헤드라이트 접촉불량으로 인한 교체로 나를 당황 시킨 적이 있지만 이게 특별히 다른 바이크에 비해서 심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일제 바이크들은 관리편의성이 좋지만 내구성은 좀 다른 문제다). 이 중 비용적으로 가장 타격이 있었던 건 헤드라이트와 인젝터 교체였고, 리콜항목이기도 했던 유압클러치 액츄에이터 고장은 엔진은 걸려도 기어변속이 되지 않아 용달비가 더 나왔다 (이건 라이딩 경험이 많지 않다면 바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부품이라 그런지 최근 투어링들은 유압식 클러치에서 케이블식 클러치로 변경되기도 했다).
소모품을 자주 교환해야 해서 번거롭다는 선입견

나는 다른 브랜드의 바이크를 타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자동차 한대를 관리하는 정도의 정성(?)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의외로 소모품의 교체주기가 긴 편이라 비록 비용은 제법 나오지만 자주 손 볼 필요는 없더라. 오일교환 주기도 지금까지 매 7,000km 정도 마다 합성유로 교체해 줄 뿐이지만 엔진의 질감은 여전하다. 무엇보다 내 로드글라이드의 경우 18만km 중반 가깝게 달렸지만 아직 클러치디스크의 교체주기가 오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의아하게 생각될 정도다.
아무튼, 내가 경험한 할리데이비슨은 장거리투어에도 자신 있게 끌고 나갈 수 있는 믿음직한 바이크다. 18만km가 넘은 이제부터는 잔고장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이상징후가 발견되면 빠르게 조치하는 것 정도로 앞으로도 듬직하게 달려 줄 것이다.
할리데이비슨이 아닌 일본산이나 유럽산 바이크들도 장기간/장거리를 주행한 리뷰가 많으면 좋겠지만 생각보다 쉽게 찾아보기 힘들기에 이번 편에는 내가 경험한 할리데이비슨에 대한 경험을 나누어 보았다. 대부분의 바이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 건강하게 달릴 수 있고, 이건 할리데이비슨 뿐만 아니라 다른 메이커의 바이크들도 마찬가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만, 국내 바이크 시장에서 주류에 속하는 중소형 배기량의 바이크들은 대배기량 바이크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 정도로 사용되어 ‘관리경험이 부족하고 곧 다른 바이크로 기변 할 라이더’에게 맡겨 지기 때문에 유지보수의 소홀과 잘못된 정비로 인한 고장까지 메이커의 문제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다고 나는 생각한다. 튜닝은 오너가 하지만 그 책임은 바이크 제작사에게 돌리는 꼴이다. 내가 본 할리데이비슨들 중에도 흡배기 튜닝을 잘못 한 경우 열관리가 안되어 고열에 시달리고 엔진 내구성이 급격하게 떨어져 고장이 나는 경우를 봤지만, 순정으로 관리매뉴얼을 지킨 경우는 대부분 별다른 탈이 없었다. 내 경우는 오일누유도 아직 없다.
이제 본격적인 라이딩 시즌이다. 우리 모두 자신의 바이크를 바르게 알고, 관리매뉴얼에도 관심을 기울여 준다면 우리의 바이크는 브랜드를 막론하고 우리의 믿음직한 동반자가 되어 줄 것이다. 모두 사고와 고장이 없는 올 시즌이 되시기를 바란다.
할리데이비슨을 타면서 관심을 가져서 손해 볼 일 없는 포인트
앞 포크의 백화 : 할리데이비슨 모델 중, 포크가 알루미늄으로 되어있는 모델들은 시기는 조금씩 차이가 있어도 백화가 몇 년 안에 찾아온다. 이때 크롬포크로 교환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굳이 그렇게 할 필요는 없고 샌드페이퍼와 크롬광택제만 있으면 크롬에 버금가는 광택과 깔끔함을 유지할 수 있다. 방법은 열심히 문지르면 된다(1000방, 2000방, 크롬광택제 순서다). 할리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바이크에도 해당될 것다.
구동벨트의 잡소리 : 할리는 구동벨트가 체인이 아니라 벨트드라이브다. 구동력의 전달은 체인만 못하지만 내구성이 좋고 소음이 적은 게 장점이다. 하지만, 뒷 타이어의 교환시에 벨트의 위치를 잘못 잡으면 슥슥거리는 잡소리에 한 동안 시달리게 된다. 나도 5만km 정도에 같은 경험이 있어서 벨트의 수명이 다 된 것으로 오해 했었지만 아니었다. 벨트 노치와 가장자리를 물수건으로 깨끗이 닦아내는 것으로 대부분 해결되고, 그래도 소리가 나는 경우 테프론 스프레이를 뒷 풀리에 살짝 뿌려주는 것으로 잡소리가 사라진 경험이 있다. 물론, 벨트텐션을 정확하게 세팅하는 것은 기본이다. 벨트가 간혹 끊어지는 경우도 벨트텐션이 안 맞거나 모래 등의 이물질이 벨트 노치 사이에 끼는 것이 원인이라고 하니 위의 사항만 잘 지키면 나와 같이 18만km를 넘게 탈 없이 쓸 수 있다.
브레이크액과 클러치액 교체 : 많은 할리라이더들이 의외로 이 두가지 항목을 자주 교체하지 않는다. 나도 브레이크액은 매뉴얼대로 교체해도 클러치액은 자주 교체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다지 어렵지도 않고 비용이 크게 비싸지도 않은 이 두가지 항목이 우리의 안전라이딩에는 가장 중요한 항목들과 연관되어 있고, 고장이 났을 때 가장 당황스럽고 위험할 수 있는 부분이다. 대부분의 할리에 사용되는 DOT4 브레이크액은 친수성이라 수분유입으로 인해 2년 이상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하고 이번에 나는 클러치에서 그 차이를 제대로 경험했다.
엔진오일과 미션/프라이머리 오일의 교체주기 : 의견이 분분한 항목이다. 일제 레플리카들은 2000~4000km 정도에 엔진오일을 교체하는 경우도 많다지만, 할리데이비슨은 오일량도 4리터가 넘게 들어가고 엔진회전수도 낮기 때문인지 내 경우 매 7000km마다 순정합성유로 교체하곤 하는데 아직도 엔진은 노후의 징후가 없다. 나는 중장거리 중심으로 주로 타기 때문에 엔진냉각이 충분히 되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적어도 일제 레플리카처럼 4000km 이전에 엔진오일을 교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미션/프라이머리 오일도 특별히 비용이 높지 않아서 7000km마다 엔진오일과 함께 교체하는데 그래서인지 아직도 출고시에 장착된 클러치디스크가 슬립이 없다. 한번 해보시라.
고급유의 사용 : 나는 항상 고급휘발유를 사용한다. 할리는 노킹에 취약한 공랭식 엔진이라 노킹의 발생포인트를 지연시키는 고급유가 분명히 도움이 되고 특히 더운 여름에는 필수라고 믿는다. 할리도 원래 고급휘발유 세팅이지만 많은 오너들이 그냥 일반유를 넣고, 나도 불가피하게 몇 번은 일반휘발유를 넣어보았지만 분명 노킹포인트가 달라 기어의 변속시점이 다르고, 따라서 연비도 다르더라(트립미터에 표시되는 주행가능거리가 고급유는 550km 보통 내외지만 일반유는 500km를 넘기 힘들더라). 배기음도 살짝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