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평에서 만난 폭우
우리나라의 특징인 삼한사온의 날씨와 뚜렷한 사계절이 언제부턴가 뭉뚱그려져서 뒤섞이는 느낌이다. 나만 그런 생각이 드는지는 모르겠지만, 요즘은 영상 15도를 넘나들다가도 몇일 후에는 영하 5도를 넘게 내려가는 엉뚱한 날씨가 반복되어 ‘과연 봄이 온 건가?’ 싶기도 하다. 가뜩이나 요즘 봄은 정말 찰나의 시간에 지나가서 봄날씨를 즐길 수 있는 날이 몇일 되지도 않는데 말이다. 게다가 지난 겨울에는 눈비도 참 많이 왔고, 작년보다 기온의 오락가락이 더 심했던 것으로 기억된 겨울이었다.
이런 날씨가 계속되면 우리 라이더들은 일년에 몇일 되지도 않는 ‘쉬는 날’ 라이딩을 계획하는 것이 쉽지 않다. 초봄의 우중투어는 감기 걸리기 딱 좋기 때문에 조심 해야 하지만 도무지 예측되지 않는 날씨 덕분에 출발 전날 정도가 되어야 ‘그날’의 날씨가 괜찮을지를 그나마 짐작할 수 있다 보니 일찌감치 휴가를 내거나 일정을 비워 두어야 떠날 수 있는 박투어를 계획하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물론 할리데이비슨 로드글라이드와 같은 대형 투어링 바이크들은 넉넉한 배기량으로 열선자켓과 장갑 등의 전열기구를 쓸 수 있고, 여벌의 옷가지와 용품을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수납공간, 다소 미끄러운 노면에서도 상대적으로 덜 미끄러지는 묵직한 무게, 그리고 전면 페어링 덕분에 초봄의 찬바람과 비까지도 상당히 막아주기에 중소형 바이크들보다 기후에 대한 적응력이 좋은 편이다. 하지만, 대신 대부분의 할리데이비슨 라이더들은 몸의 연식(?)이 그닥 좋지 않아서 결국 고달프기는 매한가지다. 결국 오락가락하는 날씨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느 바이크도 예외가 되기는 어렵고 날씨를 이길 수는 있는 라이더는 없기에 투어 중의 날씨를 잘 예측하는 것은 안전과 무병장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변수인 셈이다.
문제는 날씨예보는 일기예보 사이트별로 다르고, 때로는 기상청의 정보를 사용하는 예보의 경우에도 앱에 따라서 기상청과 다르며, 심지어 기상청도 시시각각 그날의 예보를 실시간 중계(?)하는 당황스런 경험을 하기도 한다. 그만큼 날씨의 예측이 슈퍼컴퓨터를 사용할 만큼 어려운 것이기도 한 셈인데… 요즘 뉴스를 보면 과학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해서 슈퍼컴퓨터를 돌릴 전기료 예산도 없다고 하니 앞으로는 지금보다도 못한 정확도로 있으나 마나 한 예보가 되는 게 아닐까?
나는 최근 몇 년간은 소위 ‘날씨요정’(내가 나가는 날은 눈비도 안 오고, 심지어 다른 라이더들이 비를 맞은 날에도 나는 아슬아슬하게 비를 피하는 놀라운 경험의 연속이었다)이라고 할 만한 라이더였다. 그래서 장마철에도 하늘을 한번 보고 ‘비 안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우비 하나도 챙기지 않고 나가도 두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작년 하반기부터는 살살 날씨요정의 기운이 사라지기 시작해서 작년엔 폭우는 아니라도 간간히 비를 맞은 날들이 있었다. 그렇다 보니, 그 동안 잊고 있던 날씨의 중요성을 요새 심하게 실감하고 있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나름 아래와 같은 ‘날씨대응 루틴’을 지켜 라이딩을 하고 있다.
첫째, 우선 다양한 일기예보를 확인하며 무엇보다 기상도를 면밀히 살펴본다. 예측 사이트별로 다른 일기예보는 혼란스럽기만 하기 때문에 기상도를 통해 기온, 바람의 방향, 주변날씨, 습도 등을 살펴서 그날의 날씨를 ‘셀프 기상대’가 되어 예측한다. 나를 책임지고 지켜줄 수 있는 건 결국 나 밖에 없으니까(나름 기상청보다 정확한 예측이 되더라).
둘째, 여벌의 옷가지를 챙겨간다. 추위가 완전히 가시기 전까지는 양쪽의 새들백 중에 한쪽엔 ‘특이기후’에 대응하기 위한 장비를 넣어둔다. 폴라플리스 자켓이나 패딩조끼, 겨울용 여벌의 장갑, 핫팩 정도다. 겨울용 가죽자켓은 가죽이기는 해도 방수성이 좋은 가죽이라 폭우만 아니라면 굳이 우비를 입을 필요까지는 없고, 만약 예상 외의 폭우를 만나면 가까운 카페에서 쉬거나 편의점에서 일회용 비옷을 덧입는 것으로 충분하다.

셋째, 오락가락하는 날씨에는 라이딩 거리를 줄이고 야간에는 타지 않는다. 내 경험으론 비가 오더라도 낮에는 그닥 위험하진 않았다. 특히, 할리데이비슨을 비롯한 투어링바이크는 빗물을 상당부분 막아주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상의 속도로만 라이딩한다면 다리와 손 정도를 제외하면 그닥 젖지도 않는다 (물론, 신호대기로 정차하면 홀딱 젖는다). 반면, 야간에는 일단 시야확보가 잘 되지 않아 노면의 포트홀이나 물웅덩이 등이 제대로 보이질 않고, 무엇보다 차량운전자들이 바이크를 잘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위험하다. 해외의 경우는 비가 오더라도 반사성이 좋은 페인트로 차선을 도색해서 밤에 라이트만 받으면 차선이 비행기 활주로처럼 더 잘 보이는데, 우리나라는 특수도료를 공급하는 국내 독점업체에서 기술개발을 하지 않는 것인지 저렴한 재료를 사용해서인지 밤에 비에 젖으면 차선이 보이질 않는다.
이렇게 나름 준비를 한다고 해도, 하늘의 뜻은 내 기대와 다른 경우가 있다. 갑작스런 비를 만나는 경우에는 나름 다음과 같이 대응하곤 하는데 올해에는 이런 비상대응이 없었으면 싶다.
첫째, 심상치 않은 하늘과 강수량이 너무 많은 폭우가 아니면서, 목적지가 그렇게 멀지 않아서 해가 지기 전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으면 지체하지 않고 강행군 한다. 경험이 있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목적지에서 멀지 않은 어정쩡한 거리에서 숙박을 하거나 휴식을 길게 취하면 그 투어는 망친다. 하지만, 해가 저물어가거나, 목적지와 거리가 제법 남은 상황에서 강풍과 폭우를 만난다면 무리하지 않는 것이 좋다. 우선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으로 들어가서 신속하게 계획을 변경해야 한다. 비를 피하기에는 편의점도 좋고, 카페도 좋다. 하늘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다양한 숙박 앱(데일리*텔, 여기*때 등)에서 주변의 숙소들을 뒤져본다. 굳이 좋은 숙소는 필요 없지만 비를 피할 수 있는 주차장과 뜨듯한 방이면 충분하다(온돌이면 더 좋다). 비를 피할 수 있는 주차장이 중요한 이유는 늦겨울/초봄의 차가운 비를 바이크가 오래 맞으면 급격하게 온도가 떨어져서 배터리에 좋을 것이 없고, 일단 시트가 물을 머금어서 옷을 말려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 마땅한 대안이 없을 때에는 긴급하게 연락할 수 있는 히어로(?)에게 연락한다. 아마도 이런 경험이 있는 분들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라이딩 버디 중 한 친구는 식당 주차장에서 바이크를 빼다가 제자리꿍을 하면서 잘못 넘어져서 발목골절이 되는 바람에 용달을 급히 수배해서 복귀 했었고, 또 한 분은 튜브타이어의 펑크로 타이어가 주저앉아 경강로 어딘가에서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 가까운 바이크 정비소 사장님을 찾아 용달로 싣고 와서 긴급수리를 한 적이 있었다. 나도 이상기후로 인한 것은 아니었지만 ‘용달의 경험’이 있다. 2019년 부산투어 복귀 중에 울산 나사리에서 경치를 보느라 잠시 시동을 끄고 쉬었다가 출발하려는데 바이크가 시동이 걸리지 않아 할리데이비슨 부산점까지 용달로 싣고 가서 배터리를 교체한 적이 있었다 (이때는 배터리 불량이었고 다행히 보증기간 이내라 배터리는 무상교체 받았지만, 울산에서 할리 부산점까지의 용달비는 내가 부담했다).
아무튼, 우리가 도로를 달리다 보면 별의 별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일어난다. 모든 경우에 대비할 수는 없지만, 최악의 상황만큼은 피할 수 있도록 준비해서 나쁠 것 없다. 2024년 시즌에는 모든 라이더가 오락가락하는 날씨를 비롯해서 도로의 온갖 위험에서 피하며 즐거움만 남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by. 장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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