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맛바람라이더스의 치맛바람 휘날리며] 우당탕탕 로드트립 - 2 -

관리자 입력 2023.12.18 14:45 조회수 454 0 프린트
한강에서 바이크와 함께 촬영한 사진

지난 이야기 : 순천에서 서울까지 350km, 긴 여정의 로드트립 첫날, 100km도 채 못가 외투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이 국도에 떨어졌다. 한밤중 가로등도 없는 국도에서 고생 끝에 찾은 핸드폰은 박살이 나서 액정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태. 불행 중 다행히도 화면이 보이지는 않지만, 핸드폰은 완전히 망가지지 않았는지 연결된 블루투스 이어폰에서는 ‘2009년 K-pop 히트 플레이 리스트’가 흘러 나오고 있다. 남원을 지나 전주에 진입하려던 때, 공사로 인한 국도 통제를 마주치고는 낯선 시골길로 들어서게 되는데…

현재 내 위치조차 파악되지 않은 상태라 가장 가까이에 있는 도로 통제 안내를 하는 직원분에게 말을 걸었다. 일단 길을 따라가면 전주 시내가 나온다고 했다. 천안으로 가려 한다니 핸드폰을 꺼내 친절하게 알려주려고 하셨지만, 차들은 계속 들어오고, 그때마다 무전기로 통신이 들어오는 상황이라 길을 물을 다른 사람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걸어다니는 사람이 있을만한 곳이 아니다. 마침 애플워치로 전화를 걸 수 있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주변에 보이는 건물이름으로 내 현재 위치를 확인했다. 원래대로라면 17번 국도를 타고 쭉 가다가 23번으로 갈아타면 되는데, 그날따라 있던 도로 통제 때문에 갑자기 지방도로 빠져나와 버린 상태. 시내로 나갔다가 국도로 들어와야 했다. 내일도 내비를 쓰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이니 일단은 천안까지 가보려 한다고 하니, 친구는 지도를 보며 천안까지 가는 법에 대한 전체적인 브리핑을 들려주었다. 전화를 끊고 다시 안장위에 올랐다. 전주 시내에 입성하니 눈앞에 보이는 맥도날드는 따뜻하고, 편안해 보였다. 성냥팔이 소녀가 바라본 창문 너머가 이런 풍경이었을까? 홀린 듯 들어가 버거를 주문했다. 음식이 들어가니 정신이 들었다. 탑 박스에 넣어둔 노트북을 꺼내왔다. 아이폰을 수리할 수 있는 사설 수리점을 찾아보니 전주보다 천안에  훨씬 더 많았다. 천안 국도에서 빠진 뒤 멀지 않은 곳에 핸드폰 액정 수리점이 있었고 그 바로 옆에 머물만한 숙소도 있었다. 인터넷으로 내일 가장 빠른 시간의 액정 수리 예약을 하고 바로 옆에 있는 숙소도 예약한 뒤 노트에 숙소의 주소와 연락처를 적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새벽 1시. 이곳 전주에서 천안까지는 노트북을 탁 닫고 서둘러 다시 떠날 채비를 마쳤다.
 

하지만 시작부터 삐걱댔는데 내가 엄청난 길치라는걸 망각한 죄였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조차 헷갈린 것이다. 지도에서 봤던 ‘경기장 입구’며 ‘동물원’ 등 건물 이름은 기억 나는데, 지도에 있는 지표로서 기억이 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경기장 입구에서 우회전, 하는 식으로 이름만 외워버린 거라 처음 길을 잘못 들자 그 이후로는 방향을 잃어버렸다. 전주역을 바라보고 왼편에 있는 17번 국도를 타야 하는데 그 앞에서 1시간을 헤맨 것이다. 도대체 어디로 들어가야 하는지 몰라서 지나가는 차들에 물어봐도 ‘천안 가는 방향이요? 여기는 전주인데요?’라는 말만 돌아왔다. 나의 계획 아닌 계획은 국도에 있는 커다란 초록색 표지판만 보고 가는 거였다. 그런데 논산이나 천안 같은 시 단위보다 작은 단위의 지명들인지 모두 낯선 이름뿐었다.  춥고, 답답하고, 슬퍼진 나는 일단 당장 눈에 보이는 ‘익산’ 표지판을 따라갔다. 내가 타야 하는 17번 국도는 남원으로 가는 반대 방향만 보이길래 홧김에 익산에 가는 1번을 국도를 타버린 것이다. 북쪽으로 올라가는 건 맞으니까 익산에서 논산 방향을 찾은 뒤 천안으로 가면 되겠지. 그런데 어떻게든 익산에 도착하니 그다음 표지판은 ‘군산’을 가리켰다. 북쪽이 아닌 서쪽으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비게이션의 힘이 필요했다. 익산의 어떤 작은 시내를 지나고 있는데 저 멀리 젊은 남성 두 명이 보여 무턱대고 다가가 길을 물었다. 처음에는 갑자기 길을 물어오는 이륜차 운전자의 존재에 당황한 듯했는데 박살 난 핸드폰을 보고 나서는 이해가 되었다는 듯 서로 토론해 가며 적극적으로 길을 알아봐 주었다. 

길을 묻는 주제에 ‘아니 고속도로 말고 국도로 가는 길로 봐주시면 안될까요?’ 하는 요구를 해야 하는 게 민망했지만 친절한 행인분들이 ‘메가박스’나 ‘전자랜드’ 같은 잘 보이는 건물들 위주로 설명해 주셔서 북쪽으로 올라가는 방향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시내를 지나자 이상하게도 계속 시골길로 이어졌다. 이제는 길을 물을 행인도 없어서 바이크에서 내려 길에 털썩 주저앉아 노트북으로 경로를 확인하고, 다시 출발하는걸 20분마다 반복했다. 노트북의 배터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어느 잘 꾸며진 시골 마을 로터리 인도에 주저앉아 무심코 하늘을 봤는데 별이 가득했다. 내가 별자리를 공부해 두었다면 별을 따라 북쪽으로 갈 텐데. 중학교 과학 시간 때 좀 더 집중할걸.. 잡생각을 떨치고 다시 안장에 올랐다. 한 칸이었던 기름 게이지는 어두컴컴한 산길을 오르던 중 빨간색으로 바뀌어 깜짝이기 시작했다. 1리터 이하라는 말이다. 이 산 끝에는 뭐가 있을까? 이러다가 기름이 떨어지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길가의 버스 정류장을 보며 기름이 떨어진다면  저기서 노숙을 하다가 해가 뜨면 첫차를 타고 시내로 가야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춥고, 기름도 없고, 주변에 지나가는 차조차 없는 최악의 상황에서 나는 아까 봐둔 지도에 의지하기보다 감에 의지해서 운전하기 시작했다. 큰 길이나 인적이 있고 가게가 있을 만한 곳을 찾다 보니 셀프 주유소가 보였다. 주유소는 닫혀있었지만 그 건너편에 있는 편의점은 열려있었다. 이런 시골에 24시간 편의점이라니!

우선 편의점에 들어가 필요하지 않은 물건 하나를 사고 천안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말을 트고 나니 점원은 이 새벽에 시골에 온 내가 신기한지 어디까지 가는지, 왜 바이크를 타고 가는지 등 이것저것을 묻는다. 대화 끝에 내린 결론은 우선 근처 주유소는 지도상 영업중으로 되어있어도 막상 가면 닫혀있을 수 있으니, 주유소에 가느라 기름을 다 써버리는 건 무모한 짓이었다. 주유를 하지 못하면 천안까지 가기에는 기름이 부족하니 취소가 안 되는 예약한 숙소의 체크인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리고 지금 있는 곳은 익산에서도 북쪽인 시골이기 때문에 숙소가 없어서 가장 가까운 도시인 논산에 가기로 했다. 다행히도 기름이 떨어지기 전 곧장 논산이 나왔고, 논산에 진입하자마자 ‘황실 모텔’이 나를 반겼다.

낡고 허름한 모텔의 카운터 위에 있는 시계는 새벽 3시 50분을 가리켰다. 숙박료는 4만 원이라길래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카드를 내밀고 방에 들어갔다. 숙소의 인테리어는 민박과 할머니 집 사이의 어딘가 친숙한 분위기다. 욕실에 들어가 샤워기를 트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온수가 나오지 않는다. 프론트에 문의할 힘도 없어서 오들오들 떨면서 찬물로 샤워하고 전기장판을 틀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긴장이 되어서인가 4시간도 채 자지 못했다. 아침 9시에 채비를 마친 뒤 예약한 천안의 아이폰 수리점으로 향한다. 공복으로 속은 비었어도 주유를 하니 마음이 든든하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지도를 열심히 공부하고 출발했는데도 3분 거리의 천안 진입 국도에 들어가는 데에 또 30분이 소요됐다. 그리고 천안 시내에서 나와 15분 거리인 도착지까지는 1시간 30분이 소요되었다. 핸드폰를 수리하고 나니 서울까지는 수월하게 도착했다. 그날 저녁, 서울 라이더 만남의 성지인 성수동에서 친구들을 만나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종이에 경로를 적고, 신호가 걸릴때마다 주머니에서 그 종이를 꺼내 읽고 출발하기를 반복했다고 하니 혼자서 랠리를 했냐며 농담을 한다. 

주행중 핸드폰이 떨어지는 일이 아주 드문일도 아니라서, 그런일이 또 생기면 어떻게 해야할지 아니면 차라리 처음부터 네비게이션을 사용하지 않는 여행을 하면 재밌을것 같다느니 바이크 여행에 대해서 한바탕 수다를 떨었다. 

반짝이는 한강대교를 건너 노들로를 함께 달리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어렵게 도착한 서울이라 그런가, 오랫만의 고향이라 그런가 오늘따라 한강이 더 아름다웠다.

                                                                                                                                                 by. 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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